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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첫 직선 교육감으로 공정택 현 교육감이 당선됐다. 전교조 등 진보 진영이 민 주경복 후보와 보수 진영이 지지한 공 후보가 확연한 공약 차이를 보였고 이로 인해 큰 사회적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투표율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투표율은 15.5%에 그쳤고, 그 중 공 후보가 40.9%를, 주 후보가 38.3%를 득표했다. 유권자 808만 명 중 125만 명이 투표해 50만 표를 얻은 후보자가 당선된 것이다. 결국 전체 서울 유권자 중 6%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왔다.
공 후보 당선에는 강남권의 몰표가 큰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인다. 공 당선자가 전체 25개 선거구 중 17개 구에서 지고 8개 구에서만 이겼기 때문에 나오는 분석이다. 그러나 ‘경쟁’을 화두로 한 공 후보의 공약과 정책이 몰표를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주 후보의 평판과 공약에 대한 반감 때문에 공 당선자에게 표가 흘러간 것인지는 시간을 두고 분석해봐야 한다. 외양은 같아보여도 소위 배출요인(push factor)과 흡입요인(pull factor)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학교선택제란 무엇인가
공정택 당선자는 선거 공약이나 당선 후 인터뷰를 통해서 학교선택제 강화와 자립형 사립고, 국제중, 국제고 설립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교사 평가와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해서도 많은 언급을 했다. 그 중 가장 큰 관심을 끈 사안은 역시 ‘학교선택제’의 도입 여부다. 무엇보다 공 당선자 스스로 가장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해온 데다, 다른 정책과는 그 효과의 무게감도 다르기 때문이다.
교원평가나 영어 몰입 교육 정책 등은 기존 정책의 연속선상에서 놓여있는 문제이다. 반면 학교선택제는 고교 평준화로 대변되어 온 그 동안의 중등교육정책 기조를 뿌리채 흔들 수 있다.
학교선택제는 공 당선자가 교육감으로 재직하면서 이미 세운 계획이었고, 그의 당선으로 사장될 위험도 거의 사라졌다. 따라서 이 정책은 예정대로 2010학년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 핵심은 고교 신입생이 현재처럼 학교를 강제 배정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최대 네 곳까지 선택해 지원하면 후추첨 방식으로 학교를 배정받는다는 점이다. 공 당선자는 학교선택권의 확대가 교육 수요자의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반영하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교육만족도를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역설한다. 심지어 학교선택제의 정착이 다음 교육감에 대한 도리라고 강조할 정도로 신념이 강하다.
미국의 경험과 논쟁
학교선택제는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장경제 신봉자인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 (Milton Friedman)의 주장에 그 철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프리드만은 1962년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를 통해 교육에서의 정부 역할에 대해서 언급했다. 프리드만은 정부가 학교를 직접 설립해서 예산을 직접적으로 투입하는 방식 대신, 학부모들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도록 한 후 그 비용을 정부가 지불해주는 방식의 바우처 제도를 학교교육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학교선택제 논쟁은 1990년 존 첩(John Chubb)과 테리 모(Terry Moe)가 공저한 '정치, 시장, 그리고 미국의 학교(Politics, Markets, and America's Schools)‘를 통하여 다시 불붙었다. 특히 지난 2000년 부시와 고어의 대통령 선거에서 학교 선택 논쟁이 뜨겁게 진행됐다. 2002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바우처제도에 대한 합헌 판결과 부시 정부의 낙제자 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은 학교선택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미국은 학교선택제 실시 여부의 논의를 넘어, 기왕에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가 진보와 보수 진영의 학자를 아울러 펴낸 학교선택제 보고서의 제목은 "학교선택: 바른 방법으로 시행해야 변화를 가져온다(School Choice: Doing It the Right Way Makes a Difference)"였다. 학교 선택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법을 강구해야만 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 내용이다.
보고서는 학교선택제 자체는 학생들의 학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본다. 보고서가 역설하는 충고는, 이 제도의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이나 사회적 통합 저해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하고, 복잡한 각종 문제들에 대해 상이한 결과를 내놓는 주요 연구들을 지혜롭게 살피라는 점이다. 학교선택제의 효과나 효율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정, 성취도 측정, 정보 제공, 규제, 학부모의 선호, 학생들의 노력, 교사들의 반응 같은 요인들에 대해 매우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한국 사립/공립학교의 실상
서울에서 실시될 학교선택제 역시 제대로 된’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시행을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있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경쟁을 통한 진정한 학교교육의 질 향상이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설립 목적 및 조직 성격이 전혀 다른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일이 시급하다.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를 같은 범주에 두고 경쟁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립학교의 경우, 교장과 교사가 5년마다 순환 근무를 해야 하고, 법인 이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학교운영위원회도 학부모가 자녀의 졸업과 함께 그 학교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특히 학교 평가의 핵심 요소인 학생의 학업성취도의 경우, 학교 내 요인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훨씬 큰 영향 요인 - 사실 가장 큰 영향 요인 -이라는 점은 그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확인돼왔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낙후 지역의 학교에 비선호 고등학교라는 '비호감' 꼬리표를 붙이는 악순환만이 계속될 우려가 있다. 현실이 이러하므로, 언론의 예상처럼 학교 폐쇄까지 고려하는 강경책이 나온다면 사회로부터 논리적, 정서적 수긍을 얻어내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사립학교 입장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2007년 현재 서울의 297개의 고등학교 중 199개 학교가 사립, 96개교가 공립, 2개교가 국립이다. 정부가 충분한 숫자의 고교를 설립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생긴 사립학교들은 사실상 공립학교가 맡아야 할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래서 (자립형 사립고를 제외한) 사립고의 교사 임금 등 학교 운영 경비는 대부분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일단 학교법인을 구성하고 학교 건물만 지어 놓으면 그 다음은 나라가 알아서 해주는 게 현실이다. 설립 주체를 제외하곤 공립학교와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학생모집도, 재정확보도 국가가 책임져 주는 현재의 방식은 ‘사립’이라는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만약 사립학교가 비선호 고등학교가 된다면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추가 재정 지원을 할 것인가? 예를 들어 몇 년 전 학내 비리 등의 이유로 대규모 전학 사태까지 일으켰던 서초구 S 고교처럼, 그 학교를 선택한 학생 수가 감소하여 생긴 재정적 손실로 사립학교가 어려움에 처한다면 서울시 교육청은 이 학교를 계속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도태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비선호 학교의 처리 방식에 있어서 공립학교와의 공정성 문제에 직면할 것이 자명하다.
학교선택제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
따라서 학교선택제 도입 이전에 우선 사립학교를 사립학교답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립성의 회복이 우선 과제인 것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세금 울타리를 사립고로부터 걷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정부의 간섭과 지원 없이 성공할 자유와 함께 실패할 자유를 동시에 손에 쥐어주어야 한다.
굳이 학교선택제를 도입하여 학교간 경쟁을 도입하려면 공립학교는 공립학교끼리, 사립학교는 사립학교끼리 경쟁을 붙여야 한다고 본다. 공립학교는 지금보다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여 서울시내의 어떤 학교에 다니더라도 서울시 교육청이 좋은 교육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학교교육만으로도 학부모와 학생들이 바라는 내신과 대학입시,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인성함양까지 가능하도록 공립학교 전체 ‘시스템’의 질적 향상을 꾀하여야 할 것이다.
사립학교는 학교 나름의 고유한 교육을 제공하여 학부모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선택의 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종교적인 신앙의 포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라면 그 종교적 신념이 주 1회의 의식을 하냐마냐를 놓고 지금처럼 갑론을박해서는 사립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찾기 힘들다. 학교법인의 정관에 명시된 설립이념이 교육과정으로, 생활지도의 지침으로까지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에 동의하고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모든 사립고등학교가 자립할 수 있는 자활의지와 자활능력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현재의 계획과 제도 하에서의 학교선택제는 공립학교는 공립학교여서 봐주고, 사립학교는 사립이어서 봐주는 결과 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제반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학교선택제와 이에 따른 학교 간 경쟁은 교육의 질 제고와 학부모의 선택권 보장이란 본연의 의미를 살리기 힘들다. 경쟁과 선택은 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수단일 뿐이지 교육의 목적이나 이상이 아니다. 교육감의 남은 임기는 1년10개월이지만, 긴 호흡과 신중함이 필요할 것 같다. 학교의 미래도 학생의 미래만큼이나 소중하다.
박대권 / 연세대학교 교육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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