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팀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

브라질과 1-2패, 포르투갈과는 0-7패, 그리고 코트디부아르에 0-3패, 북한 월드컵 대표팀이 44년 만에 나선 월드컵 본선에서 3전 전패로 탈락했다. 북한 대표팀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 국적을 가진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을 선택하고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의 장면은 바로 화제가 되었으며, “역시 한민족이다. 북한이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했다.

네티즌들은 북한이 포르투갈에 대패한 것을 보고 “남북이 이념은 달라도 우리는 형제고 동포다”며, “저도 그 경기보고 너무 안타까웠고 지금도 바보같이 착해 보이는 북한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도 동의할 수 있었다. 북한을 한민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누구라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북한팀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브라질과의 시합 전날 "북한 팀은 이기면 영웅, 지면 가혹한 댓가를 치루게 될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탄광에 보내질 수도 있다"는 중국 언론의 보도나 김정훈 북한 축구팀 감독과의 공식기자 회견에서 “성적이 부진하면 선수들이 어떤 처벌을 받느냐”는 외신기자들의 질문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을 보면서 조금 더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 언론이나 외신 기자들이 바라보는 상황이 맞을까? 아니면 과장되었을까? '스포츠를 정치와 분리시켜야 한다는 논리’에서 보면 당연히 하지 말았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정치와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스포츠와 정치를 연결시키지 말라’는 주장은 너무 순진한 현실 인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보도와 질문들도 이해가 갔다.

예를 들어 우리는 미녀와 정치가 미인계로 연관이 되는 사례를 많이 봤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최가 국가 이미지를 높이며, 소위 말하는 3S(Sports, Screen, Sex)가 사람들을 정치에 관심 없게 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정대세 선수 이야기를 해보자. 그가 재일교포이며, 일본에서 교포들이 당했던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뜨거운 눈물을 쏟는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졌다. 그러나 나는 내 주위의 많은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라 곧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정 선수 말고도 많은 재일교포들이 일본에 있다. 그리고 그 중 약 30만 명이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환상과 조총련의 공작으로 만경봉호를 탔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일본에서 힘들게 번 돈을 빼앗기고 '째포’(재일교포의 준말)라는 비아냥을 듣다가 결국은 정치범 수용소로 갔다. '수용소의 노래’ 저자 강철환씨의 조부모들이 대표적인 조총련계 인사였으며, 어느 날 갑자기 강 씨는 아무것도 모른채 가족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다. 또 거기서 많은 조총련 간부들과 연좌제로 인하여 끌려온 그들의 가족들을 수용소에서 만났다고 한다. 물론 그 말고도 한국에 있는 1만 6천 명의 탈북자 중에는 재일교포 출신들이 많다.

평생 축구에 빠져 산 26살의 정대세는 그가 택한 북한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노력으로 국가대표급의 기량을 갖게 된 그를 높게 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감상적으로만 북한을 바라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골을 넣었을 때 한반도기가 그려진 내의를 보이며 한다는 '조국통일’ 세레모니도 의미 없이 다가 왔다. 통일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도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북한 사람들이 먼저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북한 정부는 통일을 원하지도 북한 사람들의 인권도 중요시 여기지 않겠지만.    

선수들의 처벌 문제를 물어보는 외신들도 이해가 간다. 66년 월드컵 8강에 올라가는 업적을 쌓았던 북한 선수들도 67년 5월 갑산파 숙청의 불똥을 맞아 함경북도 경성군의 도자기 공장 등으로 '혁명화’ 사업에 보내졌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한 사실이다.

북한 축구팀이 1994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단 1승 밖에 거두지 못한 이후 김정일의 지시로 12년 동안 국제무대에 나오지 못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기분 나빠 실력을 키워 국제무대에 나가라고 지시한 것이 그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북한팀에 대해서 스포츠와 정치를 연결시키지 말라며, 자신들은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에 있다. '진실을 알리는 모임’이라는 단체와 '라디오 21’이라는 라디오 매체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북한-포르투갈전 응원을 봉은사에서 했다고 한다. 그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으려나? 그러나 그들은 응원가로는 '오~피스 코리아!'(Oh, Peace Korea!)를, 응원 도구로는 한반도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사용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한국정부를 그렇게 비난하면서 북한 김정일에 대해선 한마디 하지 않는 그들은 왜 축구를 보면서 한반도에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를까?

'천안함 사건’ 등으로 남과 북 사이에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당장 평화가 필요한 것은 북한과 북한주민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차라리 북한 축구를 응원하면서 “축구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냐? 다만 김정일이 미울 뿐이지”라는 탈북자들의 심정을 그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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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 2010-07-01 | 조회수 : 152
인간은 누구나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존재이지만, 그 기저에는 먼저 개인에게 손해가 가지 않는, 또는 남이 나보다 잘되지 않는 조건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 게다가 우리는 국민정서라는 또 하나의 잣대로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고 처방하려는 듯하다. 특히 부동산의 자본이득에 있어서는 그 강도의 세기가 다르다. 서울의 재건축시장의 경우는 첨예한 대립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재건축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편견을 다시금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지난 참여정부이후 줄곧 재건축과 관련된 국민적인 정서가 규제확대를 원했으며, 이러한 정서의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하고서는 누적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재건축 사업이 사적재화에서 이루어지는 영역을 넘어 공공사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점을 보아 더더욱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재건축에 대한 그릇된 정서적 반응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첫째, 지어진지 20년 밖에 안 된 주택을 헐어내고 새로운 주택을 짓는 것은 자원의 낭비로 이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기규제나 안전진단평가를 강화하여 재건축을 억제하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사안은 자원낭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큰지, 아니면 실제 재건축이 가능한 주택들이 토지의 집약적 이용으로 이의 효율성을 배가시키는 것이 큰지, 이에 대한 양자의 비교형량이다. 또한 20여 년 전에 지어진 주택의 공간구조는 소비자의 수요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주거선호와 수요의 변화가 일시에 문제가 되는 것은 개별주택에서 자체적으로 점진적인 주택개량을 통해 충족하기 어려운 공동주택의 형태라는 점이다. 재건축은 비교적 입지가 양호한 지역에서 소비자의 수요변화에 탄력적으로 반응하여 기존의 노후화된 주택을 교체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자원낭비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둘째, 재건축을 허용하면 재건축아파트의 가격상승이 일반아파트의 가격도 올려 전반적인 부동산시장에 가격불안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재건축아파트의 가격이 안정되어야 일반아파트의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강도 높은 규제로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상승을 막고자 하였다. 그런데 학계의 여러 실증연구에 의하면 실제 이들의 인과구조가 명확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 시점의 재건축아파트의 가격은 현재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재건축 후 얻어지게 되는 신규아파트의 미래가격과 재건축비용을 고려한 순 현재가치로 거래될 수밖에 없다. 즉,  미래가격에 가장 근접한 최신주택의 가격변동에 영향을 받으며, 또한 질적으로 향상된 주택수요가 있는 지역의 재건축을 억제하면 중장기적으로 주택공급이 억제되어 이에 대한 여파로 신규주택을 포함한 일반주택의 가격을 상승시킨다. 결국 재건축 가능성이 있는 아파트 가격을 상승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일반주택의 가격안정을 위해 재건축을 억제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결여된 주장일 뿐이다.

셋째, 사회적 인프라의 확산 없이 증가된 용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배가한다는 것이다. 즉, 교통 혼잡과 도시 인프라의 부재를 의미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사업시행자에게 자기부담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실제 부담금의 과세적 성격으로 인하여 기반시설이 양호하고 수요가 많은 지역에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못해, 사업시행자는 교외지역에 주택을 건설하게 된다. 이는 결국 도시공간구조의 왜곡과 사회적 비용의 과다지출로 이어진다.

넷째, 개발이익분배의 문제이다. 재건축의 경우는 현 주택소유자인 조합원과 건설비용을 조달해 올 일반분양자, 건설사, 조합원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이들 개발이익의 분배에 있어 어느 일방적인 귀속문제로 인하여 실제 마찰이 많았다. 따라서 정부가 개발이익의 귀속문제를 공유의 형태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서 제시한 부담금과 임대주택의 공급규정 등과 같은 환수차원의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재건축도 민간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사적재화라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자산에 대한 수익률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수익률 계산에 있어 여러 변수들 중 가장 불확실한 정책적 변수로 인하여 개발위험은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고위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실제 기대수익률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개발이익을 정량적으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사전 기대수익률의 개념에 보다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지난 정부부터 줄기차게 제시되었던 재건축에 대한 논란은 특히 국민의 정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 이에 대한 규제책들이 제시되었던 부분이 많다. 이는 실제 토지의 집약적 이용을 통한 최대유효이용에 입각하여야 할 사안들이 여러 정서적 기준에 따라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그릇된 기준을 과감히 탈피하여야 한다. 또한 현행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불필요하고 부작용만 남발하는 정책은 폐기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국지적 차원에서 다루어졌던 문제에서 수도권 전체의 공간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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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렬 목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가 지난 6월 중순 밀입북을 하였다. 밀입북 과정은 보도되지 않아 그 과정은 모른다. 다만 6월 1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남조선 통일인사 한상렬 목사가 평양에 도착해 비행장에서 안경호 위원장을 비롯한 6.15공동선언 북측위원회 성원들이 그를 동포애의 정으로 맞이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한국진보연대의 지역 단체인 전북진보연대는 “남북관계 경색에 힘들어 한 한상렬 목사가 결단을 내린 것 같다”며 “진보연대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한 목사가 조직에 피해 가지 않게 혼자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또한 한국진보연대 역시 "6.15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한상렬 목사님의 집념과 신앙인의 고뇌에 공감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한 목사의 불법 방북을 보면서 세 가지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첫째는 '한 목사의 모습이 불쌍하다’이다. 사람은 어디까지 외곬수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한 목사가 아닐까 싶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6.15를 부인하고 파탄시켰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실험하여 남북관계를 어렵게 한 것은 김정일 정권 아닌가? 주민들의 생존권보다는 정권의 안위를 더 중요시했던 것이 김정일 정권인데 왜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는가?

한 목사가 이번 방북에서 만날 사람은 통일전선부 요원들 밖에 없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6월 27일 평양 칠골교회에서 일요예배에 참가해 기도를 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종교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 등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미 정치범수용소에 가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서 알 수 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가짜 교인들 속에서 정중히 기도를 하는 그의 사진은 가련하게만 느껴진다. 그는 무엇을 위해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드렸을까? 그리고 예수님은 '신앙인의 고뇌에 빠졌다’는 그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의 북한은 지난 80년대 말 문익환 목사나 임수경씨의 방북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또한 북한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한 목사 등이 탈북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북한 민중 역시 한 목사 등에게 관심이 없다. 다만 정권에 이용당하는 모습을 불쌍하게 바라볼 뿐이다. 

둘째는 '한국의 김정일 추종자들이 다시 한 번 북한 주민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라는 것이다. 탈북자 이만 명 시대가 얼마 멀지 않았다. 한 목사 등은 그들이 왜 탈북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는 관심도 없다. 필자가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북․중 국경을 넘고 있다. 또한 말도 안 통하는 중국 등 제3국에서 힘들게 살며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좌파들은 탈북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예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좌파들이 특히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 민중의 이익과 생존권 아닌가? 그런데 왜 그들은 북한 민중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까? 탈북자들을 북한사람으로 보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탈북자들의 상당수 가족이 아직 북한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언젠가 한국만큼 발전할 자신들의 고향에 가 있다. 그들은 엄연한 북한 출신 사람들이다. 

그는 8.15를 맞이하여 휴전선을 통해 돌아온다고 한다. 물론 돌아오면 법에 의해 구속될 것이다. 누구를 통해 입북했는지도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목사를 좋아하거나 이용하려는 세력에 의해 석방운동이 벌어질 앞으로의 그림들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아마 '한상렬 목사 모범 따라 6.15선언 이행하자’라는 구호 등을 내세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렇게 그와 그의 동지들은 세상 속에서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독재자를 옹호하다 독재자의 기만에 이용당한 사람들’이라고 평가 받을 것이다. 이것이 내 마음을 짠하게 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소영웅주의’를 가졌던 사람들의 말로는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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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역의존도는 2009년 기준으로 90%를 넘어섰습니다. 연간 총수출액과 수입액을 합한 것이 국민총생산의 90%를 넘은 것입니다. 참고로 이웃나라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30%정도 됩니다. 한국에서 무역은 국가경제의 사활이 걸려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개방에 대한 거부감, 특히 농업부문에서 피해를 볼 걱정 때문에 FTA는 한국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많은 나라가 경쟁적으로 FTA를 맺기 시작했고, 한국은 중요한 수출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적 지역주의와 FTA확산의 흐름에 우리도 FTA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역대국과의 본격적인 FTA추진에 앞서서 우리의 경제 상태를 확인해 볼 수 있고, FTA협상의 경험을 축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너무 거부감이 들지 않는 FTA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한마디로 'FTA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탐색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칠레였습니다. 칠레는 한국보다 FTA에 대한 경험이 많은 선진국이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멀고, 교역구조에 있어서 보완성이 컸습니다. 우리나라가 FTA를 사상 처음으로 진행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칠레에 대해서 자동차, 전자제품, 유류품 같은 제조업 부문에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고, 칠레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농수산업과 원자재 부문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교역구조가 보완적인 경우 FTA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데, 이런 면에서 칠레는 최적의 파트너였습니다.

1998년 11월 APEC정상회담으로 양국 정상은 한-칠레 FTA를 추진하기로 합의
1999년 11월 한-칠레 FTA협상 개시
2003년 2월 한-칠레 FTA정식 서명
2004년 4월 한-칠레 FTA 발효

이렇게 5년 6개월의 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를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국과 칠레의 담당자들이 협상을 타결한 시점은 2002년 10월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준동의안의 국회통과가 농촌 출신 국회의원과 농민단체의 반발로 수차례 무산되었고, 네 번의 표결 시도 끝에 가까스로 2004년 2월 통과되었습니다. 격분한 농민들은 거리로 농기계를 몰고 나와서 항의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적으로 한-칠레 FTA의 발효 이후 양국의 교역이 크게 늘었음에도 한국의 농수산업, 칠레의 제조업 등 양국이 취약점을 가지고 있던 산업은 별로 피해가 없었습니다.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에서는 4대 가운데 1대 꼴로 한국자동차를 볼 수 있습니다. 한-칠레 FTA발효 전인 2003년 현대자동차는 칠레시장에서 1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지만 2008년에는 2만 9천대를 판매했습니다. 현대차의 분석에 따르면 한-칠레 FTA발효 이후 증가한 판매량의 50%는 칠레 자동차 수요 확대에 따른 자연스런 증가였다면, 34%는 FTA로 인한 관세절감 효과와 그로 인한 판매경쟁력 강화, 시장선점효과의 결과였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산 휴대전화기는 특히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6년 동안 칠레와의 연평균 교역증가율은 22.5%로 같은 기간 세계 전체와의 교역증가율 10.7%의 두 배가 넘습니다. 올해부터는 290개 품목이 새롭게 관세가 인하되는데, 그동안 관세 인하 없이도 잘 팔리던 타이어, 철강판, 난방기 등의 수출이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칠레산 먹을거리가 인기가 좋습니다. 3월에서 5월 사이에 유통되는 포도의 대부분은 칠레산입니다. 대형마트에서 연간 포도 판매액의 50%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칠레산 포도는 5월부터 10월 까지는 국내 포도농가의 보호를 위해서 45%의 세율이 적용되는데, 국산포도가 나오지 않는 10월 말부터 4월까지는 16.6%의 계절관세가 부과되어서 수입 단가가 떨어집니다. 포도 소비층이 많은 한국에서는 일 년 내내 포도를 이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골라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렴한 칠레산 키위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키위시장을 독주하던 제스프리가 한국 농민과 상생하는 시스템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5월에서 10월에는 뉴질랜드에서 생산된 키위를 팔고, 11월에서 4월에는 제주에서 생산된 키위를 팔게 된 것입니다. 그 덕분에 키위생산 노하우도 국내 농가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2009년 국내 키위시장 점유율은 뉴질랜드 제스프리 54%, 한국 참다래 32%, 칠레산 키위 12% 순이었습니다. 현재 20%정도인 칠레산 키위의 관세가 2014년 사라지면 칠레산 키위의 가격은 더욱 떨어집니다. 포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키위를 저렴한 가격에 골라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칠레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와인과 홍어입니다. 한국에 수입되는 대표적인 칠레와인 '몬테스 알파’는 2009년까지 300만 병이 팔려서 수입 와인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지난해 전체 수입 와인 통관 량에서도 프랑스산 와인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어획량 감소로 지금은 아르헨티나산 홍어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2005년까지 칠레산 홍어는 최고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와인과 홍어의 대중화는 칠레산 물품의 수입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은 2003년까지도 FTA를 하나도 맺지 못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2004년 한-칠레 FTA의 발효를 시작으로 2006년 싱가포르와 EFTA, 2007년 ASEAN, 2010년 인도와의 FTA를 발효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미 FTA와 한-EU FTA의 발효를 앞두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FTA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막연한 불안감으로 FTA를 반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FTA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어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FTA, 한국과 칠레의 FTA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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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축제. 월드컵이 드디어 개막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월드컵을 개최됐던 8년 전의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올해에도 흥분과 감동속에서   우리나라의 선전을 기원해본다. 현재 전세계의 이목이 남아공에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 남아공의 치안문제에 대한 큰 우려심을 내비치고   있다. 대중매체를 통한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까지는 가난과 굶주림, 질병 등으로 고통 받는 최빈국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의식주   해결조차 힘들어 굶주림과 싸워야 하고 무더운 환경으로 인한 질병을 이겨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아직 미개의 삶을 살고 있는 원시부족들이   존재하는 등 우리에게는 미지의 땅, 암흑의 땅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월드컵 개최는 FIFA의 세계적인 화합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이번기회를 통해 그동안의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우고 그들의 경제가 현재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지 살펴볼 기회를 갖고자 한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그 규모가 큰 대륙으로, 50개가 넘는 나라와 다양한 인종,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원래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는 해방되었으나 1970년대까지는 경제가 장기간 정체상태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내전과 갈등이 수그러들면서 개혁과   개방, 인프라투자와 경제개발에 초점을 맞추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더럽고 위험하다는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은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진 빈민층의 삶의 모습들 때문으로 지극히 우리가 갖고 있는 협소한 생각이다. 현재 아프리카는 인구 10억명의 거대   소비시장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의 경제성장율은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으며, 전 세계인들이 괄목할 만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1991년 ~ 1995년까지 연평균 1.0%에 불과했던 성장률이 2006년에는 5.9% 성장하였으며,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대륙   국내총생산은 1조 2000억 달러로, 인도 GDP의 90% 수준, 일본 GDP의 20%를 넘어섰고, 브라질 대비 80%를 기록했다. 또한   가계소비가 러시아 및 인도와 맞먹는 수준이며, 이러한 성장률은 앞으로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 경제의 가장 큰 발전 원동력은 풍부한 천연자원, 특히 원유와 금, 다이아몬드 등 넘쳐나는 자원으로, 원자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가격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신흥 자원개발 지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이미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와 10억 인구의 시장을 잡기 위해 아프리카에 경제협력을 통한 전략적 접근을 시작했다.


한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수출규모는 2008년 130억 달러로 한국수출총액의 3.1% 수준이다. 아프리카시장에서 한국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2~3% 정도로 중국, 일본 등에 비해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아프리카는 아직까지는 미개척 시장으로 낮은 소득수준과 정치불안 등 열악한 환경으로   투자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으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의 장기적인 전망은 밝다는데 동의한다. 이미 선진국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에 이어 아프리카는 세계의 최후 개척지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프리카의 성장잠재력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다른   나라와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그들의 시장을 개척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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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강 난 천안함은 사진에서보다 더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난 8일 인터넷 파워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국방부 천안함 정책설명회에 참가해 천안함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평택 해군 2함대에 진열된 천안함 옆에는 원래 함수 위에 있어야 할 연돌이 부서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은 훨씬 심각했다. 모든 외판이 굽어져 있었고, 우현에 비해 좌현의 외판이 심하게 굽어져 올라가 있었다.

절단면을 따라 들여다본 선체에선 내부 폭발이나 그을림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함저의 스크래치도 볼 수 없었고, 소나돔도 긁힌 자국 없이 양호했다. 천안함을 직접 보니 내부폭발설, 좌초설 등과 관련된 증거들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천안함 구석구석을 돌며 해군 준장의 설명까지 들으니 원인은 더욱 명료해보였다. 외부에서의 충격파와 버블제트로 인한 천안함 폭침, 천안함을 직접 보고도 다른 원인을 찾는다는 건 '눈 뜬 장님’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듯했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은 과학적, 체계적 조사와 검증을 통해 밝혀진 것이었다. 이번 조사에는 민,군 합동조사단과 함께 조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미·호·영·스 등 외국인 조사단까지 참여했다. 쌍끌이 어선에 의해 어뢰의 추진동력장치의 일부가 수거되면서 그것이 북한 어뢰 설계도면과 일치한다는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까지 확보했다.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것이 여러 정황과 증거들로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11일, 한국의 대표적 NGO인 참여연대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에 천안함이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의혹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냈다. 참여연대는 서한에서 “한국 정부의 발표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좀 더 믿을 만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안보리가 이 문제를 논의할 때 신중을 기해달라”고 했다. 서한의 근거자료로 국내에서 발표한 '천안함 이슈 리포트 1,2’의 영문번역 20여쪽을 첨부했다. 여기에는 조사 결과 발표의 8가지 의문점과 조사과정의 6가지 의혹이 담겨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도 지난 14일 천안함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안보리 이사국들에 보냈다. 평통사는 서한에서 “객관적 근거 없이 북한을 비난하는 결의나 성명을 채택하면 유엔 안보리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도 해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통사는 2001년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적은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등 좌파 인사들이 공동대표로 있는 곳이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문들은 대체로 이러하다. ▲물기둥에 대한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 ▲생존자나 사망자의 부상정도가 어뢰폭발에 합당한 것인지 설명이 부족하다. ▲절단면에 폭발의 흔적으로 볼만한 심각한 손상이 있는지 설명이 없다. ▲천안함 사건 초기 TOD 영상 진짜 없는지 의문이다. ▲가스터빈실에 대한 조사 없는 결과 발표, 그렇게 서두를 이유 있었나. ▲화약 아닌 알루미늄 산화물이 폭발의 흔적인가.

문제는 이러한 의문들은 천안함 사건 발생 초기부터 불거져 나온 의혹들이었고, 대부분 국방부 등에 의해 해명된 사실들이라는 것이다. 합동조사단은 백령도 초병이 물기동을 목격하고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는 진술 등으로 물기둥이 발생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TOD 영상에 대해선 국회에서 풀영상이 공개된 바 있고, 감사원조차 “사고 당시 동영상은 진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가스터빈실은 날아가서 손실됐지만 터빈 일부는 찾아내 이미 언론에 공개되면서 가스터빈실 문제는 일단락됐다.

결정적으로 참여연대가 서한을 보낸 시점은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전체 이사국을 상대로 천안함 침몰 관련 브리핑을 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도 이사국 대사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다. 14일 브리핑 이후 이사국 대사들은 “합조단의 조사가 매우 과학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브리핑 내내 합조단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거나 부인하는 발언은 전혀 없었다. 국제사회가 합조단의 객관적, 과학적 조사 결과에 대해 인정한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초기에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민·군·외국인 조사단까지 참여해서 조사에 대한 신뢰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결정적 증거들을 찾는 데 매진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조사 결과에 대해 국제 사회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긴 했지만 이는 그때마다 객관적 증거들을 토대로 해명됐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소행임이 명확해진 이때만큼은 한국 정부를 비롯해 국민, 시민단체 모두가 합심해 대처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하는 것이 합당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천안함의 절단면을, 북한 어뢰 설계도면과 일치하는 어뢰 추진부를, 합조단의 객관적 조사 결과를 보고도 이 모든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의혹만 나열했지 정부 조사 결과를 뒤집을 만한 증거를 추가하지도 않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을지 몰라도, 명확히 해명된 것을 두고 여전히 의혹이라며 이를 정리해 유엔 안보리까지 보낸 것은 과도한 처사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참여연대의 이 같은 행동은 친북 단체라는 오명을 쓰기에도 적합하게 됐다. 참여연대의 여러 주장들이 북한의 주장 내용과 같기 때문이다. 마치 북한 정부의 대변인이나 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참여연대가 초창기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장했으나 노무현 정부 출범 전후부터 국가보안법 폐지, FTA 반대 등 반미 친북노선에 앞장서 왔다며 참여연대의 이념적 편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 제기 서한을 보낸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지 않느냐는 분석도 나올만하다.

지난 15일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참여연대의 서한 발송이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는 의견이 50%에 달했다. '적절했다’는 의견은 19.2%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도 참여연대의 행동이 과도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NGO로서 국제적 현안에 대한 견해를 전달한 통상적 행위라고 했지만, 그것이 정말 NGO로서의 의무에 충실했던 것일까. 정말 천안함의 진실이 다른 데 있다고 보는 것인지 참여연대의 이번 행동의 저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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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이 다가오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 선거가 코앞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시끄럽다. 언론 때문인지 사람들은 지방자치 선거에는 큰 관심이 없다. 물론 필자 역시 선거에서 누가 되는가보다는 천안함 사건으로 유발된 남북 간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정도가 심하다. 서울시장이 누가 되건, 경기도 교육감이 누가 되건 선거는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 버렸다. 8명이나 뽑아야 되는데 누가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선거유세 차량에서 나오는 노래는 소음이 된지 오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물론 현재의 남북관계가 결정적인 계기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책임의 시작이 천안함 사건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북풍으로 인해 지지율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여권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야권 역시 하나의 바람을 준비하고 있었다. 야권은 1년 전 세상을 떠난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추억을 이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큰 역할을 했던 '노풍’이 그것이다. 그를 비난했다가 말을 바꾼 민주당이나 그를 따르던 국민참여당 모두가 그랬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은 야권이 준비했던 '노풍’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야권의 의도와는 다르게 북풍이 불었다. 이것은 여권이 준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재 여당의 선거 전략을 무작정 욕할 수는 없다. '노풍 vs 북풍’의 대결, 즉 죽은 노무현이 산 김정일을 이기지 못한 것일 뿐이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의 분위기가 무척 아쉽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단계가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정책이 아닌 '이미지 정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쉽다. 그래서 정당과 정치인들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후보들의 지난 삶과 정책에 대해서 보도해야 할 언론사들 역시 정파적 이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좌파 언론이든 우파 언론이든 어느 한쪽을 밟기 위해 기사를 쓰는 느낌이다. 지금 언론은 정치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이 아닌 자기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꼭 되길 바라는 정당의 2중대가 된 것 같다.

시장이나 도지사가 어떤 정책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교육대통령이라는 교육감 후보가 어떤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4년 동안이나 내가 사는 도시와 우리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교육부와 경기도교육감의 견해 차이로 교육정책의 혼란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만큼 시도 교육감의 지위와 역할이 중요한데 누구를 뽑아야 할지 시민들이 얼마나 아는지 걱정된다.

우리들은 후보자가 현직에 있던 지난 4년 동안 잘 했기 때문에 다시 뽑는다던지, 아니면 잘 못해서 다른 사람을 뽑는지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민의 책무’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정당과 언론의 책무’이다. 소위 회자되는 '현직 프리미엄’이 당선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현 정부를 비난하는 반대급부로 당선되어서도 안된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6월 2일이 지나면 지방자치 선거에 대한 회의적 여론이 가득할 것이다.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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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가 이제 3일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진행되는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로, 국회진출과 관계가 없어 직접적 의사결정과정과는 다소 관계가 적으나, 현 정권의 중간 성적표로서 민심의 향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길거리에 벽보가 붙여지고, 며칠 전부터는 사람이 많은 길거리마다 선거차량을 앞세워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개사한 음악소리가 퍼져 나오고 있다. 또한 TV에서는 각 당 대표들의 활동과 선거 후보자들의 토론을 매일 방영하고 있어 자연스레 선거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있다. 과거 유세 형태를 생각해보면 많이 개선된 모습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의 선거유세 기간을 떠올리자면, 그 당시엔 자신들을 선전할 방법이 거리유세나 포스터였기 때문에 필자 집의 벽 한쪽에 각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나란히 붙여져 있었고, 선거를 마치고 그 포스터를 뜯어 담벼락 한쪽 페인트가 벗겨져 보기 흉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또한 사람들은 다들 선거 뇌물을 받아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의 손에는 동일한 물품이 항상 들려있었다. 지금은 선관위의 역할이 강화되어 직접 선거의 모든 활동을 준비, 감독, 계획함으로써 예전에 비해 훨씬 민주적이고 계획적인 선거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후보자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생각과 태도로 자신들을 선전한다. '정치’라는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지만, 우선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속당이고, 소속당에 어울리는 공약들일뿐, 정치를 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과 자신의 생각, 의식을 선전하는 일은 드물다. 이것은 국민을 대표해서 올바른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의지에 앞서 결과적으로 본인의 권력과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참여를 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는 선거 후보자들이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당의 색을 나타내는 띠를 두르고 큰소리로 인사하며 명함을 건네주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자주 접하면서 무심결에 명함을 받아보다가 필자는 '이걸 왜 나눠주시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명함을 살펴보았던 이유는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의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본 모든 명함의 앞면에는 큰 사진과 기호 및 이름, 소속된 당과 지역을 나타내고 있었고, 뒷면에는 각자 자신의 양력을 빼곡히 적어놓았다. 게다가 받아본 홍보물 양력에는 대부분 대학에 재학중이거나 박사학위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다. 도대체 유권자들에게 무엇을 보고 후보자를 판단하여 선택하라는 것인가!

과거 시행해온 4번의 지방선거 투표율은 1회 때 68.4%였던 것이 2회 52.7%, 3회 48.9%, 4회 51.6%로 항상 50% 내외 수준으로, 70~80% 정도인 대통령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이번 선거의 경우 1인 8표로 한꺼번에 이를 모두 선출해야만 하므로, 짧은 선거유세 기간에 각 분야의 후보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런 경우 특히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차별화된 자신만의 공약을 선전하는지를 빠르게 보고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누구를 우리 지역대표로 선출하느냐에 따라 자치단체의 발전과 주민의 삶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나 지방자치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지역대표를 선출하는 일이 더욱 의미를 갖고 있다. 투표일을 단순히 쉬는 날로 인식하는 젊은이들의 의식개선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각자 차별화되고 소신 있는, 실천할 수 있는 공약으로 선거유세를 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표를 노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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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3섹터에 의한 사업인 공공부문과 민간건설사 등이 중심이 되어 역세권, 상업복합단지 등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공모형 개발사업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래의 사업수익성을 토대로 사업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 PF(Project Fiancing)의 가장 큰 장점으로 PF는 주로 과거 사회간접자본(SOC)에 적용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민간의 부동산개발사업과 공공의 대형개발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모형 PF사업의 취지는 주택건설과 동시에 상업 및 공공시설의 적기공급, 상권의 활성화, 자족기능확보 등으로 입주자의 생활편익을 증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과거 상업시설과 편의시설의 개발이 후행적으로 이루어져 실제 입주민들의 기반시설이 열악했던 점을 반영한 결과이다. 한편, PF사업의 추진효과로는 공공측면에서는 공공 공간의 확보와 중심지역의 계획적 개발로 바람직한 도심공간을 조성하며 나아가 건설경기를 진작시키는데 있다. 민간측면에서는 공공부문의 공신력을 기초로 행정상의 신속한 처리를 통하여 사업속도의 진척과 금융비용절감, 분양성 향상 등을 가져온다. 또한, 초기에 토지취득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고 우량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개발사업은 지난 2001년을 기점으로 급성장하여 2010년 현재 무려 100조원 이상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사업추진의 난항을 겪고 있다. 이후부터 업계와 학계의 토론회를 통해 원활한 사업추진의 전제에 대하여 열띤 논의가 있어왔다. 얼마 전의 부동산개발협회의 세미나에서도 정부 주요부처 관계자들과 학계와 업계의 공통된 합의와 개선방안이 모색되었다. 하지만 공공성격이 강한 사업의 특성상 민간부분의 인센티브와 자발적인 참여를 유발하는 원인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PF사업이 민간 투자사업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무엇보다도 사업성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능력 수준이다. 이를 위해 건설업계, 금융기관, 부동산신탁회사 등 모든 관련기관의 조직적인 노력이 요구되지만, 특히 정부의 입장에서 분양가상한제의 폐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정부나 지자체가 사업주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특혜시비가 발생될 소지가 크다. 따라서 정부가 중심이 되어 대형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 절차 및 운영상의 투명성을 제고하여 시비의 원천을 차단하는 한편 대국민 홍보 노력 또한 실시해야한다. 또한 정부차원에서의 각 주무관청의 합의를 통한 효율적인 사업추진을 위한 절차상의 배려가 필요하다. 셋째, 복합개발사업은 규모도 크고 사업 단계별 위험도 크므로 위험관리를 위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는 특히 발주처와 참여업체가 위험관리를 통한 위험인지로 사업에 내재되어 있는 불특정 위험요인을 사전에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최근 수도권내에서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요 프로젝트는 근접한 지역 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제업무빌딩, 위락시설 등의 수요는 주거시설개발보다 엄격하고 상세한 예측이 필요하다. 정부차원에서는 공모형 PF사업에 대한 현재의 지원법체계를 보다 간소화하여 프로젝트의 특수성을 인정해주는 특별법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단위의 커다란 프로젝트에 따라 국가 및 지역경제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크기에 더 이상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방안은 본질을 더욱 흐릴 뿐이다.

향후의 공모형 개발사업의 올바른 추진과 정착을 위해, 발주처인 공사와 참여업체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 운영상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민간 참여업체의 동기와 이들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배려가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한다. '공모형' 이라는 의미에서 공공의 사업에 민간업체를 고려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현재의 경기현황과 여러 개발사업의 난항에 비춰볼 때, 민간이 제시하는 대안에 보다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우리 민간기업의 개발사업의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해외 신도시 개발사업에 수출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입증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는 좀 더 민간업체를 배려하는 진심어린 개발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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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기회가 마련됐다. 지난 12일 사단법인 시대정신 주최로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와 발전방향’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은 한 시절 지난 이슈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위기론(혹은 후퇴론)이 대두되고,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던 것이 지난해 여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위기론은 해소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이번 세미나가 “보수 입장에서 한국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진보 진영에서도 한국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하게 되면, 양 진영이 민주주의의 공통항을 도출할 수 있게 되고, 경쟁과 협력을 함께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취지에 공감이 됐다.

토론회는 진보와 보수의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공통항을 찾을 수 있었다. 김주성 한국 교원대 교수와 손혁재 한국 NGO학회장은 1987년 이전의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가 억압받았던 시대였다고 바라봤다. 김주성 교수는 민주화 이전 체제수호의 반공정치는 자유민주적인 국민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오히려 국가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제약할 수밖에 없는 자기 모순성을 품고 있었다고 보았다. 손혁재 회장은 군부통치와 헌정중단, 불법과 부정 선거, 부정부패, 인권유린 등의 행위가 공공연하게 행해져, 한국 민주주의가 순탄하게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억압받았던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공 이후 변화 발전 해온 과정이라는 것 또한 공통분모였다. 손혁재 회장은 민주화 이후 20여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비민주적 구조가 깨어지고 민주화의 물결이 사회 저변까지 밀려들어갔다고 했다. 특히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평가했다. 김주성 교수는 집권보수세력이 놀라운 속도로 국민국가를 수립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켰고, 비집권민주세력은 완성도 높게 민주화를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 대해 진보와 보수 양측 모두 어느 정도 공감할만한 요소를 찾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현단계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선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손혁재 회장은 모두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10여년간 민주주의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지난 2년 이명박 정부 아래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로 점철돼 왔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민주주의는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위기론은 과장됐다는 보수 쪽 시선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손혁재 회장은 “이명박 정부 2년은 한국사회의 전방위적 후퇴로 특징지어진다”고 규정했다. 군부독재시절보다 더 심하게 민주주의가 무시되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일방독주와 소통의 부재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했다. 국가폭력이 재등장했으며,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대식 국정추진에 맹목적으로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윤평중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길-국가철학으로서의 공화정과 급진자유주의’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널리 공감하고 있는 현실 진단은 신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여러 차원에서 반민주적이며 반통일적이고 반민중적인 형태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적 위기를 부른 장본인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난 2년 동안 민주주의는 후퇴했는가. 손혁재 회장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때의 민주주의의 성과로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의 확대, 부패방지의 노력, 의회 권능의 강화, 경선제 등 새로운 정당문화의 출현,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등을 꼽았다.

'후퇴’라는 표현에는 기존의 방식을 추구하지 않거나 과거로 회귀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성과들이 퇴색되었다거나 억압됐다는 뚜렷한 징후가 없다. 여전히 한국은 민주주의 시대이며 국민들의 권리는 법으로나 제도로서 보호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 군부독재시절보다 심하다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다.

윤평중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한국 민주주의적 위기를 불렀다고 볼 수 있는 증거로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와 미디어관계법 강행처리 등을 들었다. 미디어관계법 강행처리는 소통을 외면한 이명박 정부의 일방독주를 잘 보여주며, 광우병 촛불시위는 이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었다는 것이다.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 진보진영은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거짓된 정보의 유통으로 선동에 의한 집회였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또한 국회에서의 강행처리는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평가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있어왔던 일이다.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이 제출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한나라당의 저지 속에서도 강행 통과됐었다. 2006년 12월에도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민주노동당의 반대 속에서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을 강행처리한 바 있다. 법안 강행처리 등은 비선진적 정치문화 형태의 문제이지, 이를 두고 민주주의 후퇴의 증거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 위기론에서 제기되는 여러 증거들은 어찌보면 민주주의의 수준이나 현단계를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증거들은 간혹 정치 문화의 비합리성과 연관된 것이거나, 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지 퇴보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 문제를 지적하며 참여민주주의나 공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가 지향할 모습이라는 주장도 타당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나 합리적이진 않다. 참여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 공론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견이 잘 수렴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단계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제도의 개혁 등 민주주의 자체가 옳게 기능하도록 바꿔가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후퇴’, '위기’라는 단어가 사용되면 마치 한국이 독재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은 한국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핵심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국민 각자의 견해와 입장을 대표자 선출로 대변토록 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지만 없어진 권리는 없다. 여전히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진보와 보수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항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크나큰 시각차를 발견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현 단계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에선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현 단계를 민주주의의 후퇴로 보면 대체할 무언가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주의가 성장의 궤도에 있다고 보면 보완할 무언가를 고민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보는 시점과 대안마저 이렇게 다른데 민주주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어쩐지 서로의 간극만 확인한 셈이 된 듯하다.

Posted by 자유기업원